주거비는 선택이 아니라 고정 지출이다
"나는 집을 안 살 거니까 주거비가 없다"고 생각하는 분이 있습니다. 하지만 이것은 착각입니다. 월세를 내든, 전세 보증금의 이자를 포기하든, 대출 원리금을 갚든 — 우리 모두는 매달 주거비를 지불하고 있습니다. 차이가 있다면 그 돈이 공중으로 사라지느냐, 아니면 내 자산으로 쌓이느냐 하는 것뿐입니다.
이 글에서는 주거비의 본질을 파헤치고, 같은 금액을 지출하더라도 그 결과가 어떻게 극적으로 달라지는지 구체적인 숫자와 함께 살펴보겠습니다.
주거비의 세 가지 형태
대한민국에서 주거비는 크게 세 가지 형태로 나뉩니다.
첫째, 월세입니다. 가장 눈에 보이는 형태의 주거비로, 매달 집주인에게 일정 금액을 지불합니다. 서울 기준으로 원룸은 월 50~70만 원, 투룸 이상은 80~120만 원, 신축 아파트는 150~250만 원 수준입니다. 이 돈은 지출 즉시 사라집니다. 10년을 내든 30년을 내든, 한 푼도 돌아오지 않습니다.
둘째, 전세 보증금의 기회비용입니다. 전세에 사는 분들은 "나는 매달 나가는 돈이 없다"고 생각하기 쉽습니다. 하지만 4억 원의 전세 보증금을 묶어두었다면, 그 돈을 연 4% 수익률로 운용했을 때 얻을 수 있는 연 1,600만 원, 월 약 133만 원의 수익을 포기하고 있는 것입니다. 눈에 보이지 않을 뿐, 이것도 엄연한 주거비입니다.
셋째, 대출 원리금 상환입니다. 내 집을 마련한 사람이 매달 은행에 갚는 돈입니다. 3억 원을 30년 만기 연 3.5%로 빌렸다면 월 약 135만 원을 갚게 됩니다. 여기서 핵심은, 이 135만 원 중 상당 부분이 원금 상환 — 즉, 내 자산을 쌓는 행위 — 이라는 점입니다.
결국 세 경우 모두 매달 100만 원에서 150만 원 내외의 주거비를 지출합니다. 금액은 비슷한데, 결과는 완전히 다릅니다.
서울 주거비의 현실: 숫자로 보기
2024년 기준 서울의 주거비 통계를 살펴보면 그 규모에 놀라게 됩니다. 한국부동산원 자료에 따르면, 서울 아파트 평균 전세가는 약 5억 7천만 원이고, 평균 매매가는 약 9억 2천만 원 수준입니다. KB부동산 리브온 데이터에서는 서울 아파트 평균 월세가 보증금 1억 원에 월 100만 원 내외로 집계됩니다.
30대 직장인 A씨의 사례를 구체적으로 들어보겠습니다. A씨의 월 실수령액은 350만 원입니다. 서울 마포구에서 보증금 5,000만 원에 월세 85만 원짜리 투룸에 삽니다. 월세 85만 원에 관리비 15만 원을 더하면 매달 100만 원이 주거비로 나갑니다. 이는 월 소득의 28.6%에 해당합니다.
같은 지역에서 전세를 산다면? 보증금 3억 5천만 원이 필요합니다. 이 돈의 기회비용은 연 4% 기준 연 1,400만 원, 월 약 117만 원입니다. 관리비를 포함하면 실질 주거비는 월 132만 원으로, 오히려 월세보다 비쌉니다.
같은 지역에서 5억 원짜리 아파트를 매수한다면? 자기자본 2억 원에 대출 3억 원(30년 고정 3.5%)을 받으면 월 상환금 약 135만 원입니다. 금액만 보면 가장 비싸 보이지만, 이 중 원금 상환분이 포함되어 있다는 점에서 본질적으로 다릅니다.
35년의 시간이 만드는 격차
주거비의 진짜 무서움은 단기가 아니라 장기에서 드러납니다. 25세부터 60세까지 35년간 주거비를 지출한다고 가정해 봅시다.
월세 거주자의 경우를 먼저 보겠습니다. 매달 100만 원의 월세를 35년간 납부하면 총 지출액은 4억 2천만 원입니다. 매년 월세가 3%씩 오른다고 가정하면 — 이것도 보수적인 추정입니다 — 35년간 총 지출액은 약 7억 4천만 원에 달합니다. 그리고 60세가 되었을 때, 이 돈으로 남은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한 채의 집도, 한 푼의 자산도 없이, 여전히 월세를 내야 하는 상황이 계속됩니다.
반면 내 집 매수자의 경우를 보겠습니다. 25세에 5억 원짜리 아파트를 매수하고 대출 3억 원을 30년간 상환합니다. 월 135만 원씩 30년간 갚으면 총 상환금은 약 4억 8,600만 원입니다. 이 중 이자는 약 1억 8,600만 원이고, 원금 3억 원은 온전히 내 자산이 됩니다. 그리고 30년 후인 55세에 대출이 완납되면, 그때부터는 주거비가 관리비 외에 사실상 0원이 됩니다.
여기에 부동산 가격 상승까지 고려하면 격차는 더 벌어집니다. 서울 아파트가 연평균 4%씩 상승한다고 가정하면 — 실제 지난 20년간 서울 아파트 연평균 상승률은 이보다 높았습니다 — 5억 원짜리 아파트는 30년 후 약 16억 2천만 원이 됩니다. 60세 시점에서 월세 거주자는 자산 0원에 여전히 월세를 내고 있고, 매수자는 16억 원 이상의 자산에 주거비 부담이 거의 없는 상태입니다. 같은 금액을 매달 지출했는데, 결과는 16억 원 이상의 차이가 납니다.
"내 형편에 집을 사는 건 무리"라는 오해
많은 분이 이렇게 말합니다. "월세 100만 원은 감당할 수 있는데, 대출 상환 135만 원은 무리예요." 월 35만 원의 차이가 부담스러운 것은 사실입니다. 하지만 이 35만 원의 차이가 만들어내는 장기적 결과를 생각해 보면, 조금 다른 관점이 가능합니다.
월 35만 원을 추가로 부담하면, 그 돈의 상당 부분은 원금 상환으로 내 자산이 됩니다. 월세 100만 원은 100% 소비이지만, 대출 상환 135만 원 중 상당 부분은 저축입니다. 결국 실질적인 "순 지출"은 대출 이자 부분만이고, 원금 상환분은 저축과 같습니다.
초기 대출 상환 구조를 보면 이것이 더 명확해집니다. 3억 원, 30년 만기, 연 3.5% 원리금균등 상환의 경우, 첫 달 상환금 135만 원 중 이자가 약 87만 원, 원금이 약 48만 원입니다. 즉 순수 주거비(이자)는 87만 원으로, 월세 100만 원보다 오히려 적습니다. 나머지 48만 원은 내 자산으로 쌓이는 것입니다.
시간이 지날수록 이 구조는 더 유리해집니다. 10년 후에는 이자 비중이 줄고 원금 상환 비중이 늘어, 같은 135만 원 중 원금 상환분이 70만 원 이상이 됩니다. 20년 후에는 원금 상환분이 100만 원을 넘깁니다. 같은 금액을 내면서 갈수록 더 많이 저축하는 구조입니다.
주거비를 "보이게" 만드는 것이 첫걸음
가장 중요한 것은 내가 지금 얼마의 주거비를 지출하고 있는지 정확히 인식하는 것입니다. 많은 사람이 월세는 지출로 인식하면서, 전세 보증금의 기회비용은 인식하지 못합니다. 또한 "집을 안 사니까 주거비가 없다"고 착각하기도 합니다.
지금 바로 계산해 보시기 바랍니다. 월세 거주자라면 월세 + 관리비가 실질 주거비입니다. 전세 거주자라면 보증금의 연 4% 기회비용을 12로 나눈 금액이 월 실질 주거비입니다. 부모님 집에 사는 경우에도, 독립한다면 들어갈 주거비를 계산해 보면 그 규모에 놀라게 됩니다.
통계청 가계동향조사에 따르면, 한국 가구의 평균 주거비 비중은 소득의 약 20~25%입니다. 서울은 이보다 높아 30%를 넘는 경우도 흔합니다. 40년 직장생활 동안 소득의 25%가 주거비로 나간다면, 이는 10년치 연봉에 해당하는 금액입니다. 이 거대한 금액이 소비로 증발하느냐, 자산으로 전환되느냐의 차이가 바로 내 집 마련의 핵심입니다.
주거비에 대한 관점을 바꿔야 합니다
주거비는 줄일 수 있는 지출이 아닙니다. 어디에 살든, 어떤 형태로든, 주거비는 반드시 발생합니다. 노숙을 하지 않는 한 피할 수 없는 고정 지출입니다. 문제는 금액이 아니라 방향입니다.
같은 130만 원을 지출하더라도, 그것이 월세로 나가면 130만 원 전액이 소비입니다. 대출 상환으로 나가면 이자를 제외한 나머지가 저축입니다. 전세 보증금으로 묶여 있으면 그 보증금이 만들어낼 수 있었던 수익이 기회비용으로 소비됩니다.
이것은 "집을 무조건 사라"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각자의 상황, 직장의 위치, 가족 구성, 자금 여력에 따라 최적의 선택은 다릅니다. 하지만 적어도 내가 매달 지출하는 주거비의 본질이 무엇인지, 그 돈이 어디로 흘러가는지를 명확히 인식하는 것이 모든 주거 의사결정의 출발점입니다.
다음 글에서는 같은 금액을 월세와 대출 상환으로 각각 지출했을 때, 10년 후와 30년 후의 자산 차이를 구체적인 숫자로 비교해 보겠습니다.
> 이 글은 GIPTner가 정리한 내집마련 가이드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