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에도 비용이 있다
"집을 안 사면 리스크가 없잖아." 무주택자들이 자주 하는 말입니다. 맞는 것처럼 들립니다. 집을 사면 가격이 떨어질 리스크가 있지만, 안 사면 그 리스크를 피할 수 있으니까요. 하지만 이것은 리스크의 절반만 보는 것입니다.
모든 선택에는 양방향의 리스크가 존재합니다. 집을 사면 가격 하락의 리스크가 있고, 집을 사지 않으면 가격 상승의 리스크가 있습니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도 하나의 "선택"이며, 그 선택에는 분명한 비용이 따릅니다. 이 글에서는 그 비용을 구체적인 숫자로 계산해 보겠습니다.
무행동 비용의 구성 요소
집을 사지 않고 기다리는 동안 발생하는 비용은 눈에 잘 보이지 않기 때문에 과소평가되기 쉽습니다. 하지만 하나하나 뜯어보면 결코 적지 않습니다.
첫 번째는 주거비 지출입니다. 무주택자는 전세든 월세든 주거비를 지출합니다. 전세의 경우 보증금에 대한 기회비용(그 돈으로 다른 투자를 할 수 없으므로)과 전세 대출 이자가 발생합니다. 월세의 경우 매달 나가는 임대료가 그대로 소비됩니다. 이 돈은 자산 형성에 전혀 기여하지 않습니다.
두 번째는 자산 가격 상승에 따른 기회비용입니다. 부동산 가격이 상승하면, 같은 집을 사기 위해 더 많은 돈이 필요하게 됩니다. 이것은 직접적인 현금 손실은 아니지만, 구매력이 감소한다는 점에서 실질적 비용입니다.
세 번째는 원금 상환에 의한 자산 축적의 기회 상실입니다. 주택담보대출을 받아 집을 사면, 매달 상환하는 금액 중 원금 부분은 내 자산으로 축적됩니다. 대출 상환은 일종의 "강제 저축" 효과가 있는데, 집을 사지 않으면 이 기회를 놓칩니다.
네 번째는 세제 혜택의 미활용입니다. 주택 보유자에게는 주택담보대출 이자 소득공제, 장기보유특별공제 등의 세제 혜택이 있습니다. 집을 사지 않으면 이런 혜택을 전혀 활용할 수 없습니다.
5년 시뮬레이션: 매수자 vs 비매수자
구체적인 시나리오로 비교해 보겠습니다. 서울에서 시세 8억 원짜리 아파트를 두고, A씨는 매수를, B씨는 대기를 선택했습니다. 두 사람 모두 현금 3억 원을 보유하고 있습니다.
A씨(매수자)의 상황입니다. 8억 원짜리 아파트를 매수합니다. 자기자본 3억 원, 주택담보대출 5억 원(연 4%, 30년 원리금 균등상환). 월 상환액은 약 239만 원입니다. 이 중 원금 상환분이 매달 약 73만 원(초기 기준)이므로, 5년간 원금 약 5,000만 원이 축적됩니다.
B씨(비매수자)의 상황입니다. 전세 4억 원에 거주합니다. 자기자본 3억 원 중 전세보증금으로 사용하지 않는 부분은 예금에 넣어둡니다. 전세대출 1억 원(연 4%)으로 월 이자 약 33만 원 지출. 나머지 생활비와 저축 패턴은 A씨와 유사하다고 가정합니다.
이제 5년 후 세 가지 시나리오를 비교합니다.
시나리오 1: 시장 20% 상승
5년 후 아파트 가격이 8억에서 9.6억이 된 경우입니다.
A씨의 자산 상태를 봅시다. 아파트 시가 9.6억 원, 대출 잔액 약 4.5억 원(5년간 원금 약 5,000만 원 상환), 순자산 약 5.1억 원입니다. 5년간 총 이자 지출은 약 9,340만 원이지만, 시세 차익 1.6억 원과 원금 축적 5,000만 원을 합하면 순이득은 약 1.16억 원입니다.
B씨의 자산 상태를 봅시다. 현금 3억 원에서 전세대출 이자 5년간 약 2,000만 원 지출. 예금 이자 수입을 감안해도 순자산은 약 3억 원 초반입니다. 같은 아파트를 사려면 이제 9.6억 원이 필요합니다. 5년 전보다 1.6억 원이 더 필요해졌고, 자본은 거의 늘지 않았습니다.
순자산 격차는 약 2억 원입니다.
시나리오 2: 시장 보합
5년 후 아파트 가격이 8억 그대로인 경우입니다.
A씨의 자산 상태입니다. 아파트 시가 8억 원, 대출 잔액 약 4.5억 원, 순자산 약 3.5억 원. 5년간 이자로 약 9,340만 원을 지출했지만, 원금 약 5,000만 원이 축적되었습니다. 시세 차익은 없지만 3억 원으로 시작해서 3.5억 원의 순자산이 된 것입니다.
B씨의 자산 상태입니다. 현금 약 3억 원 초반. 전세대출 이자 약 2,000만 원 지출. 순자산은 약 2.8~3억 원입니다.
시장이 전혀 오르지 않았는데도, A씨가 B씨보다 약 5,000만~7,000만 원 정도 나은 상황입니다. 대출 원금 상환이라는 "강제 저축" 효과 때문입니다.
시나리오 3: 시장 10% 하락
5년 후 아파트 가격이 8억에서 7.2억이 된 경우입니다. 이것은 매수자에게 가장 불리한 시나리오입니다.
A씨의 자산 상태입니다. 아파트 시가 7.2억 원, 대출 잔액 약 4.5억 원, 순자산 약 2.7억 원. 3억 원으로 시작해서 2.7억 원이 되었으니, 약 3,000만 원의 순자산 감소입니다.
B씨의 자산 상태입니다. 현금 약 2.8~3억 원. A씨보다 약 1,000만~3,000만 원 유리합니다.
시장이 10% 하락한 경우, B씨가 약간 유리합니다. 하지만 그 차이는 1,000만~3,000만 원 수준입니다. "집값이 10% 떨어졌다!" 하면 큰일 난 것 같지만, 매수자와 비매수자의 실질 차이는 생각보다 크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매수자는 5년간 원금을 갚아나가며 자산을 축적했고, 비매수자는 주거비로 돈을 써버렸기 때문입니다.
비대칭적 리스크 구조
위 시나리오를 종합해 보면 흥미로운 패턴이 보입니다.
시장이 20% 오르면 매수자가 약 2억 원 유리합니다. 시장이 보합이면 매수자가 약 5,000만~7,000만 원 유리합니다. 시장이 10% 떨어지면 비매수자가 약 1,000만~3,000만 원 유리합니다.
매수자가 유리한 시나리오에서의 이득 폭이, 비매수자가 유리한 시나리오에서의 이득 폭보다 압도적으로 큽니다. 이것을 비대칭적 리스크 구조라고 합니다. 매수자의 최악의 경우(10% 하락)에도 손실이 제한적인 반면, 비매수자의 최악의 경우(20% 상승)에는 손실이 매우 큽니다.
더 중요한 것은 확률입니다. 한국 부동산의 5년 단위 통계를 보면, 서울 아파트 가격이 5년간 상승한 구간이 하락한 구간보다 훨씬 많습니다. 상승 시나리오의 확률이 더 높다면, 기대값 측면에서 매수가 유리한 것입니다.
"안 사면 리스크가 없다"는 착각의 해부
"안 사면 리스크가 없다"는 생각이 왜 착각인지 좀 더 깊이 들여다보겠습니다.
첫째, 구매력 리스크를 무시하고 있습니다. 은행 예금의 연 수익률이 3~4%인 반면, 서울 아파트의 장기 연평균 상승률은 약 5~7%입니다. 현금을 들고 있으면 매년 부동산 대비 구매력이 2~3%씩 줄어드는 셈입니다. 10년이면 20~30%의 구매력을 잃습니다.
둘째, 인플레이션 리스크가 있습니다. 물가 상승률만큼 현금의 실질 가치는 줄어듭니다. 부동산은 인플레이션 헤지 자산이지만, 현금은 인플레이션에 가장 취약한 자산입니다.
셋째, 심리적 비용이 있습니다. 집을 사지 않고 기다리는 동안 시장이 오르면 스트레스를 받고, 하락하면 "더 떨어질까 봐" 여전히 불안합니다. 결국 어떤 상황에서도 편안하지 않은 심리적 압박을 받게 됩니다. 반면 매수 후에는 단기 등락에 관계없이 "내 집이 있다"는 안정감이 있고, 장기적으로 시장이 회복한다는 확신이 있다면 편안하게 보유할 수 있습니다.
넷째, 전세 리스크가 있습니다. 2022~2023년 전세 사기 사태에서 보았듯이, 전세도 무위험 자산이 아닙니다. 보증금을 돌려받지 못할 리스크, 갑작스런 전세가 상승으로 이사해야 하는 리스크, 집주인 변경으로 인한 불안정성 등이 존재합니다.
모든 선택은 리스크를 수반한다
결국 핵심은 이것입니다. 리스크가 없는 선택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집을 사면 가격 하락 리스크, 금리 상승 리스크, 유동성 제약 리스크가 있습니다. 집을 사지 않으면 가격 상승 리스크, 구매력 하락 리스크, 전세 리스크, 주거 불안정 리스크가 있습니다. 어느 쪽을 선택하든 리스크가 따르며, "안 사면 안전하다"는 것은 한쪽 리스크만 보는 편향된 시각입니다.
성숙한 재정적 판단은 "리스크를 피하겠다"가 아니라 "어떤 리스크를 감수하겠다"를 선택하는 것입니다. 자신의 연령, 재정 상황, 가족 구성, 직업 안정성, 거주 지역 선호도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하여, 어떤 리스크가 자신에게 더 감당 가능한지를 판단해야 합니다.
30대 초반의 안정적 직장인이라면, 매수 후 가격이 일시적으로 하락하더라도 시간이 해결해 줄 가능성이 높습니다. 반면 같은 사람이 집을 사지 않고 10년을 보내면, 40대에 훨씬 비싼 가격으로 사야 하거나 영원히 무주택자로 남을 수 있습니다.
행동의 비용 vs 무행동의 비용
마지막으로, 두 가지 비용을 비교해 보겠습니다.
행동의 비용, 즉 집을 사는 것의 비용은 대부분 가시적이고 계량 가능합니다. 대출 이자 얼마, 취득세 얼마, 관리비 얼마. 이것들은 명확히 숫자로 보이기 때문에 부담스럽게 느껴집니다.
무행동의 비용, 즉 집을 사지 않는 것의 비용은 대부분 비가시적이고 느리게 축적됩니다. 기회비용, 구매력 하락, 자산 격차 확대. 이것들은 숫자로 바로 보이지 않기 때문에 비용으로 인식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인간의 심리는 가시적인 비용을 비가시적인 비용보다 훨씬 크게 느끼도록 설계되어 있습니다. 이것을 "현상 유지 편향"이라고 합니다. 현재 상태를 유지하는 것이 안전하게 느껴지는 심리적 경향입니다. 하지만 숫자로 계산해 보면, 비가시적인 무행동의 비용이 가시적인 행동의 비용보다 클 수 있습니다.
내 집 마련을 고민하고 있다면, 한 가지만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안 사는 것"도 하나의 투자 결정입니다. 그리고 그 결정에도 비용이 따릅니다. 매수의 리스크만 계산하지 말고, 미매수의 리스크도 동일한 무게로 계산해 보십시오. 그때 비로소 균형 잡힌 판단이 가능해집니다.
> 이 글은 GIPTner가 정리한 내집마련 가이드입니다.